"이 안경을 쓰면 만취 상태처럼 보인다고 해요. 이제 목적지에 도착하셨어요. 한번 걸어온 길을 보세요."
안내자 말에 안경을 벗자, 장애물들이 처참하게 넘어져 있었다.
음주 운전의 결과가 고스란히 보였다.
비록 모형이었지만 실제라고 가정하니 끔찍했다.
음주 운전을 한 적도 없지만, 만취한 적도 없어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
'이건 운전은커녕 걷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용산구 재난안전체험박람회.
안전은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고란 언제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 도사리고 있는 위험 속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4월 16일 '국민 안전의 날'을 앞둔 4월 2일, 대한민국 정책 기자단 세 명은 행정안전부와 용산구청이 주최하는 재난안전체험박람회를 찾아 일상 속 안전에 관해 알아봤다.
◆ 완강기 체험
완강기 안전 체험을 직접 해봤다.
행사장인 전쟁기념관에 들어서자, 이층 높이 임시 벽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은 완강기가 눈에 띄었다.
완강기는 화재 현장에서 몸에 매고 내려올 수 있는 피난기구로 공동주택이나 업무시설 등 3층 이상 10층 이하의 건물에 설치돼 있다.
완강기는 고정하기→밀기→던지기→벨트 착용→하강 순서로 사용한다.
우선 지지대 고리에 완강기 고리를 고정해 잠그고 지지대를 창밖으로 밀어 던진다.
안전벨트를 착용한 후 벨트가 풀리지 않게 양팔을 쭉 뻗어 벽면을 짚으며 하강한다.
물론 체험에서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보다 쉽게 할 수 있었지만, 미리 연습을 해놓고 위치를 잘 알아두어야 할 듯싶었다.
◆ 소화기 체험
세 명의 정책 기자들이 소화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어 소화기를 체험해 봤다.
소화기는 이전에도 사용해 본 적이 있지만 종종 사용법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막상 불이 나면 당황해 잊어버릴 수 있어서다.
세 명의 기자 모두 안전고리를 빼고 방향을 잡은 후 분사했다.
실제로는 절대 소화기를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심폐소생술 체험
곳곳마다 심폐소생술을 연습하는 인체모형들이 있었다.
그런데 눈에 띈 건 심폐소생술을 체험하는 기계였다.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은 모두 잘 알고 있을 터다.
나 역시 모형으로 연습을 해본 적은 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가야 하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계가 인식해서 알려주는 게 정확할 듯하다.
심폐소생술 기계를 통해 올바른 방법을 익히고 있다.
옆에서 안내해 주던 용산소방서 박인철 소방관은 이렇게 말했다.
"심폐소생술이란 말이 심장과 폐를 살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실제 살려야 할 장기는 뇌거든요. 혈액 순환을 도와 뇌사를 막는 거죠. 일단 목적을 잘 알고 정확하게 익혀서 하는 게 중요하고요. 가정에서 많이 발생하므로 가족을 위해서 배운다고 생각하고 익히면 좋을 것 같아요."
◆다중 운집 인파 체험
"갑자기 앞뒤에서 밀쳐져 순간적으로 놀랐네. 팔로 숨 쉴 공간을 확보해 놓으니 좀 살 것 같아요"
다중 운집 인파 체험.
행사장에서 눈에 띄는 체험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을 때 압박감의 정도를 체감하고 주의할 점을 알려주는 다중 인파 체험이었다.
안내자는 사람이 많이 모였을 때 꼭 ABC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A(ARM)는 팔을 가슴 앞쪽으로 모아 숨 쉴 공간을 확보하고, B(BAG)는 가방을 가슴 앞으로 두고 숨 쉴 공간을 확보하며 C(C-POSITION)는 넘어졌을 경우 'C'의 형태로 몸을 말아 머리와 가슴, 복부를 보호하는 걸 의미한다.
체험을 마친 어르신들은 날 좋은 봄이면 어디나 사람이 많기 때문에 꼭 기억해야겠다고 말했다.
◆가스 안전 체험
"비눗물을 연통에 뿌려보세요. 가스유출 여부를 알 수 있어요. 가스가 새면 거품이 생기거든요."
가스가 유출되면 비눗물을 뿌렸을 경우 이러한 거품이 발생한다.
오래전부터 가스가 누출하면 거품 유·무로 확인할 수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가스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비눗물을 만들어 뿌려봤지만, 거품인지 뿌리며 생긴 비눗방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곳에서는 직접 가스가 누출됐을 때 나는 거품을 볼 수 있어 앞으로도 확실하게 구분이 될 듯싶었다.
바로 옆에서는 담당자가 가스 연통이 낡아 위험하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노후한 보일러의 파손된 부분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병일 지사장은 "가스 사고는 노후나 부식으로 발생하는 사고가 잦아요. 요즘은 가정집에서 안전장치들이 잘 돼 있어 일반적인 사고는 줄었지만, 캠핑용 카나 텐트에서 부탄 캔을 사용할 경우 과열되는 사고가 발생하곤 해요."라고 가스의 위험성을 알려줬다.
◆음주 운전 체험
고글을 쓰고 음주 체험을 해보는 어르신을 부축하고 있다.
"어르신 어지러우시면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음주 운전 체험을 돕는 경찰관이 음주 체험 안경을 쓴 어르신의 팔을 부축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교육해 준 용산경찰서 교통과 김세윤 경장.
아이들 지도를 해주던 용산경찰서 교통과 김세윤 경장은 "시민을 대상으로 음주 운전의 위험성과 교통안전을 몸소 체험해 볼 부스를 마련했어요. 음주 운전 체험 안경을 착용하면 거리 감각과 방향 감각이 상실되거든요. 이를 통해 음주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해 보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교통안전에 관해 교육을 듣고 있다.
가장 많은 교통사고 유형을 묻자 "2023~24년 용산구 관내 교통사고 통계상 오토바이 사고가 가장 잦고, 이어 고령 보행자들 무단횡단 사고가 잦았어요."라고 답했다.
이어 "이륜차 캠페인을 하고 있고 경로당을 방문해 안전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생존배낭 꾸리기 체험
생존배낭 꾸리기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생존배낭 꾸리는 체험도 진행됐다.
배낭이 주어지고 앞에 다양한 비상용품이 놓여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넣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부터 30초간 시간을 드릴게요. 이 가방 안에 비상시 꼭 필요한 비상용품을 담아 보세요."
30초라는 시간도 촉박했지만 모두 필요할 것만 같았다.
물을 포함해 응급 상자 등 여러 가지를 넣으려고 했는데 그만 30초가 지났다.
안내자는 내가 넣은 것을 보며 하나씩 설명을 해나갔다.
"물은 큰 병을 가져갈 필요는 없어요. 무겁고 오염될 수 있어서 작은 병을 여러 개 넣어야 좋아요. 카레 나 즉석 음식은 만들 수 없어, 그냥 섭취할 수 있는 것으로 넣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안내자는 비상용품을 용도별로 분류하고 무게를 분배하며 접근성을 고려해 생존배낭을 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생존배낭을 만들어 놓고 종종 정기 점검해 교체하라고 말했다.
당장 집에 가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책 기자들이 본 안전, 안전, 안전!
이날 정책 기자 세 명은 각각 또는 함께 체험하며 안전을 체감했다.
긴 시간 동안 행사장을 돌아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또 안전박람회에 오기 전과 달라진 생각도 있을까.
여러모로 안전에 관한 생각들이 궁금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기자가 가상으로 음주 운전 체험을 해보고 있다.
김윤경 기자(이하 김): 여러 안전 체험을 했는데요. 전 개인적으로 완강기와 음주 운전 체험이 확 와닿았어요. 행사를 통해 더 체감한 안전 분야가 있었을까요?
허민 기자(이하 허): 저는 심폐소생술 기계가 인상적이었어요. 정확한 연습을 통해 목적을 알고 익혀 시행해야 할 것 같아요.
김: 이전에 위험했던 경험이 있었을까요?
허: 저는 예전에 집에서 향초를 켜두고 외출했던 거예요. 한참 후에 생각나 부랴부랴 돌아갔는데 다행히 다 녹아 유리컵 안에서 꺼져 있더라고요. 자칫했으면 홀랑 다 타 버렸겠죠. 이후부터 주의하고 있어요.
노한호 기자(이하 노): 저는 이전 회사에서 멀티탭을 여러 개 꽂아 화재가 날 뻔했던 경우가 있었어요. 스파크가 튀어 후속 조치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아찔하더라고요. 회사에서 안전은 직원 안전과도 연관돼 있어 업무 중에도 늘 신경 써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책 기자가 안전에 관한 퀴즈를 풀고 있다.
김: 집, 회사 어디를 불문하고 평상시 안전을 고려해야겠어요. 오늘 안전 체험 후 느낀 점, 평소 안전에 주의하는 점이 있을까요?
노: 아까 음주 운전 체험을 했지만, 졸음운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어요. 어쩌면 졸음운전은 음주 운전보다 좀 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서울-양양 고속도로 간에 휴게소가 멀거든요. 그럴 때는 중간에 졸음 쉼터 아니면 쉴 때가 없더라고요. 전과 달리 요즘은 피곤하면 쉬어가겠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각심을 좀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생활 속에서도 '설마 불이 날까?' 싶고 먼 이야기 같잖아요. 그렇지만 늘 사용하는 가스 밸브나 콘센트 같은 곳에서 일어나니까요. 주로 사용하는 것부터 안전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행기 구조 상황을 연습하는 어린이들.
행정안전부는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으로 국민들에게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며 빈틈없는 재난 상황 관리 및 대응과 겨울철~여름철 재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안전 약자 보호 사각지대 해소 및 현장에서 작동하는 재난 관리 체계 확립, 사회재난 예방, 관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이 수상 안전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위험은 늘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지만 방심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 경각심을 버리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점검과 주의를 통해 위험으로부터 사전 예방하며 만에 하나 위험 상황에 부닥치면 미리 방법을 익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