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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복지’, 오해를 넘어 성과로
이번 정부가 출범하면서 복지정책의 기본기조로 ‘약자복지’를 제시했을 때, 약자복지가 학술적으로 잘 쓰이지 않았던 개념일 뿐 아니라 복지 대상자를 ‘약자’로 지칭하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가치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자들과 시민단체에서는 개념에 대한 혼란과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사각지대 없이 찾아내 더욱 두텁게 지원’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새로운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어려운 국민에 대한 급여 수준을 높이는데 있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약자복지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및 추진방향 중 중요한 한 꼭지이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서 ‘필요한 국민께 더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약속된 바 있고, 2022년 9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통해 ‘촘촘하고 두터운 취약계층 보호’로 구체화되어 지속적으로 추진돼왔다.
이러한 방향에서 지난 2년여 간 취약계층 중심 소득안전망 강화,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 맞춤형 소득·돌봄지원 강화, 청년, 중장년 등 새로운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등 중요한 정책 영역들에서 기존 사업 강화와 함께 새로운 사업 발굴이 이루어졌다. 관련 예산만 보더라도 2023년에는 14.3%, 2024년 13.8% 증가 등 대폭 증액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올해 증가율(13.8%)은 정부 총지출 증가율(2.8%)의 4배 수준으로 대내외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약자복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정부가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성과(outcome)를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새로운 취약계층 발굴을 위해 세웠던 중기 계획들, 예를 들어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2022년 11월),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년 5월), 고립은둔청년 발굴·지원 방안(2023년 12월) 등은 우리 사회가 이전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숨겨진 복지 수요를 확인하고 정책화하는데 어느 정도 진전을 가져왔다. 또한 제6차 장애인정책 종합계획(2023년 3월),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3년 9월), 제3차 사회보장 기본계획(2023년 12월) 등에 약자복지의 기조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계획된 로드맵에 따라 하나씩 실현되어 가고 있는 단계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미 구체화된 정책 성과들도 적지 않다. 기초생활보장, 국가장학금 등 74개 복지사업 선정기준인 기준중위소득은 2023년과 2024년 연속으로 역대 최대 폭으로 인상(2023년 5.47%, 2024년 6.09%)해 관련 급여수준이 상향되고 대상자 범위를 늘림으로써 저소득층 보호가 강화됐다.
여기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7년 만에 상향(기준중위 30→32%)함으로써 생계급여 수급자 수의 증가와 생계급여액 상향이 동시에 이루어져 가장 어려운 계층의 생활 수준 개선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2023년 4월~),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2024년 6월~) 등 최중증 발달장애인 맞춤형 1:1 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도 정책의 우선 순위를 가장 어려운 계층에게 부여하는 약자복지의 철학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노인들을 위해서도 노인일자리 확대(2022년 84만 5000명에서 2024년 103만 명) 및 보수 인상(2024년, 6년 만에 7% 인상), 기초연금 인상(2022년 30만 8000원에서 2024년 33만 5000원) 등으로 소득보장을 강화하고, 지역사회 의료-요양-돌봄 연계를 통해 안정적이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지원하고자 노력해왔다. 새롭게 발굴된 복지수요를 정책화하여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지원사업을 올해 7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했고,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현금 지원과 서비스 지원을 확대했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도 이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시작한 새로운 복지사업 중 하나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성과들을 볼 때 약자복지는 일부 취약계층만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복지는 약자와 강자를 구별해서 지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애주기에서 약해지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원해 더 나은 삶의 여정으로 나아가도록 돕겠다는 취지이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을 보더라도 보편주의라는 가치를 중요시한다고 해서 복지급여를 무차별적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급여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중층적으로 구성하는데 노력해오고 있다. 이번 정부 출범 초기의 복지정책이 취약계층 관련 정책 개선에 우선 순위를 두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복지 확대 과정에서 놓쳤던 영역과 대상에 대해 보완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집권 후반기를 향해가는 시점에서 정부는 더욱 촘촘하고 두터운 약자복지의 다음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전 생애주기에서, 변화된 경제·사회환경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무엇인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운 상황들을 잘 진단하고 조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복지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ICT·AI 기술을 활용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고도화 등과 같이 새로운 접근도 중요하며,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청년·중장년 일상돌봄, 긴급돌봄 등 돌봄서비스 체계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